거리의 가수에서 불멸의 아티스트로, Edith Piaf

2020. 6. 29. 20:33자유게시판

 프랑스의 국민 가수이자 샹송의 여왕으로 그리고 가장 비천한 여인에서부터 가장 존귀한 예술인으로 살아 온 에디트 피아프~!

 

 

 

 

이 다큐 영상물에서 그녀는 말한다.

 

" 여기 울부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참피온입니다. " ~~ 라고 ...

 

 

 

. 에디트 피아프 생가를 찾은 밀가리의 포스팅

https://blog.naver.com/cong0041/220314163548

https://blog.naver.com/woon5607/90143193736

 

 

 그녀는 길가리 곡예사와 삼류 가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사창가를 운영하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우여곡절 끝에 가수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렸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삶은 불행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한때 영양실조로 몸은 허약했으며, 심지어 어린 시절에 결막염으로 수년간 눈이 멀기도 했으며, 10대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돈이 궁할 때는 매춘을 해서 부족한 돈을 메웠다. 

 그녀는 자주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셔댔고, 마약에도 익숙하게 되면서 남자들은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열아홉에 낳은 아이는 뇌수막염으로 숨을 거둔다. 거친 삶, 그녀는 거기에 익숙했다. 

 이처럼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거친 소녀, 무대 공포증으로 한껏 움츠러 들었던 신인 시절을 거쳐 몇명의 운명의 변곡점이 될 남성을 만나면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가수로 성장한 에디트 피아프의 가수로써의 삶~! 

 그녀는 정점을 향해 가다가 다시 사랑을 잃고 무너지는 고통과 그 모든 것을 다 겪은 후에도 사랑을 예찬하고 노래하는 샹송의 상징이자 레전드가 된 채 47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다.

 

 

Milord - Edith Piaf

 

 

 

 

.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와 사랑

 


 에디트 피아프는 3세부터 7세까지 각막염이 심해져 거의 맹인처럼 살았다.

 피아프의 아버지는 나홀로 유랑극단 곡예사로 살면서 피아프가 15살 되자 프랑스 전역을 데리고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듬해에는 피아프의 배다른 여동생이 아버지의 극단에 합류한다.

 피아프의 어머니는 선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는데, 피아프를 낳자마자 가족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피아프를 키운 사람들은 할머니가 운영하던 창녀촌 여관에서 기거하던 창녀들이었다. 

 창녀들이야말로 그녀를 키운 귀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창녀 티틴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 

 티틴은 피아프를 성녀 테레사가 태어난 리지외로 데리고 갔는데, 기적적으로 눈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피아프는 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평생 어려울 때마다 성녀 테레사에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만성적인 영양 실조상태에 빠져 142 cm에서 성장이 멈추었다. 

 하지만 천상의 목소리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이며, 피아프는 참 박복한 여인이었다. 

 더구나 그녀가 태어난 1915년에 세계1차대전이 터져, 현대전의 실험장으로 프랑스의 10대부터 30대까지 거의 한 세대가 참호에서 전멸했다. 

 그녀는 가장 궁핍한 시대에 가장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기적처럼 살아났다.

 피아프는 루이스 듀퐁, 마르셀 세당, 자크 필스, 테오 사라포 등 평생 네 남자와 살았으며, 네 남자 모두 피아프를 끔찍이 사랑했다.

 

 



 피아프의 사랑은 처음 거리에서 만난 루이스 듀퐁과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진다. 

 듀퐁은 피아프와 이복동생 시몽이 사는 방에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거리생활을 청산하고 화환 만드는 부업을 하자고 했지만 피아프는 단호히 거절한다. 

 

 1933년 19세에 결국 루이스 듀퐁와의 사이에 딸 마르셀을 힘들게 낳았지만, 잘 돌보지 않아 2년만에 뇌수막염으로 사망하고, 딸의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녀는 몸을 팔기 시작한다. 

 그러나 21세에 피아프는 거리에서 노래하던 중에 카바레 사장 리플레를 만나서 무대에 서고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피아프가 인기를 얻자 그녀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져 카바레 사장은 살해당하고 그녀의 인기 또한 폭락한다.

 이 시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시기와도 맞물리는데, 전후에 그녀는 독일 스파이로 몰리지만 한 레지스탕의 증언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프랑스의 저명한 시인이며 극작가요, 영화감독인 장 콕토가 그녀를 발탁해서 희곡 무대에 세운다. 

 이로 인해 그녀는 3류 화류계 사회에서 주류 사회의 예술가로 비약하게 되는데, 32세부터 41세에 피아프는 정절의 목소리로 장밋빛 인생사랑의 찬가파담 파담 등을 불러 프랑스 디스크 대상을 획득한다. 

 

 

 

장밋빛 인생 가사 해석

 

 

사랑의 찬가 가사 해석

 

 

파담 파담 가사 해석

 

 

장밋빛 인생 라이브 

 

그리고 다시 그 무렵에 운명의 남자이자 당시 미들급 세계 권투 챔피언이었던 마르셀 세당을 만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이 죽은 딸과 같았으며, 그래서 더욱 더 에디트는 그에게 집착한다. 

 1949년 세당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와 달라는 애뜻한 에디트의 요청으로 파리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가 비행기가 추락해 버리는 바람에 에디트의 영원한 연인으로 남는다. 

 

 



 그 일로 인한 자책감과 공허함에 술과 마약에 절어살던 그녀는 1951년에 무려 세 건의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겪는다. 

 미국 공연 중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팔과 갈비뼈 2개가 부러지고 연이어 또 다른 교통사고를 두 번 더 당하면서 신경계가 파괴된다. 

 일종의 다발성 신경통인데, 불면과 통증을 이기기 위해서 다시 술과 마약을 상습복용한다.
 

 

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하지 않아요) 가사해석

 

 그러나 피아프는 이같은 역경 속에서도 1952년 자크 필스를 만나 처음으로 결혼다운 결혼식을 올린다. 

 1958년부터 시작된 에디트 피아프의 부활은 전 세계적에서 가장 유명한 샹송 가수로 등극하게 된다. 

 1959년 유명한 <후회하지 않아요>로 세계적인 샹송의 여왕 권좌에 오른다.

 그리고 피아프는 1963년 10월 10일 ,그녀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테오 사라포가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한다. 

 

 

 

 

연인이 전하는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 Every damn thing you do in this life, you have to pay for." 이었다.
 (정말이지 넌 너무 막 살았어, 어찌 보상받을 수 있을꼬?) 

 아마도 그녀의 눈을 뜨게 해 준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를 향한 간절한 절규로 읽혀 지는데, 그녀의 최종사인은 간암이었다. 

 프랑스 가톨릭 교회는 그녀가 평생 불결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장례 미사를 거부했지만,그녀를 따르는 10만명이 넘는 파리 시민들은 그녀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에디트 피아프 노래 리스트

www.youtube.com/watch?v=IbWRya0vgw4&list=PLDB8B352B70D04D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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